이 글은 수업에서 진행되었던 squat에 대한 논의의 일부이다.
--------------
squat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본 것 같은데요.
열림-닫힘의 문제의식에서 역시 어떤 기억들과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수업시간에 질문하기도 한건데요.
어쨌든 비용의 문제는 예술에서도 중요합니다.
예술이 사회적이라면 그 비용을 사회에 요구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간 마련에 드는 비용도 마찬가지겠죠.
점거에 관한 기억들
1/
99년에 모집단위 광역화 문제로 본관 '완전' 점거를 한적이 있는데요.
개교 이래 처음이라고 합니다.
물론 '총장실' 점거라는 상징적인 점거는 수 차례 있었지만
행정업무를 보는 모든 곳 까지 점거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총장실 점거가 매년 되풀이되었지요.
99년 본관 점거 때는 그곳을 잘 활용했습니다.
학회나 동아리 모임을 신청을 받아서 각 회의실을 사용하도록 했고
기본적인 학생 자치 활동을 상당부분 그곳으로 이전 시켰습니다.
선전물품 같은 것을 비치해두고 학생들 누구나 쓰고 본관에 포스터나 플랑을
붙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곳에 붙어있던 한 문구만큼 '이곳은 우리의 해방구'였습니다.
2/
68년에 NLF(National Liberation Front)의 깃발이 미대사관에서 한 시간 가량 휘날리는 모습이 사진을 타고 전해졌습니다.
베트콩들이 미제국주의의 상징인 미대사관을 점거하는 모습은 전세계에 충격이 주었죠.
물론 현실에서 '점거'한 자들은 한 시간 이후 모두 '검거'되어 살해당했습니다.
3/
68년 유럽의 봉기는 소르본느 대학의 낭떼르 분교 점거 사건에서 촉발되었습니다.
여학생 기숙사에 남학생이 들어가게 해달라는 요구 때문이라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당시의 혁명적인 요구를 희화화시키려는 헛소리일 뿐이고,
중심부국가의 고도성장의 모순이 폭발한 계기로서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점거 이후 학생들은 '노동자에게 대학의 문을 열었습니다.'
점거는 빼앗는 것이 아니라 빼앗긴 것을 다시 모두에게 돌려주려는 시도인 셈이죠.
4/
영국에서 산업자본주의가 발달할 수 있는 배경은 여러가지가 있을텐데요.
자원, 증기기관, 해상무역을 통한 부의 축적...
그 중에 하나가 풍부한 산업예비군, 즉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할 수 있는 빈민들이었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이들은 '인클로저' 운동의 결과였습니다.
울타리를 쳐서 농민들을 내쫓고 양떼를 키운 것이죠.
5/
마르크스는 사적 소유의 철폐를 이야기했지만 소유 일반을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생산수단의 공유를 기초로 한 개인적 소유(individual property)를 주장했죠.
세간의 오해처럼 모두 빼앗아 국가에 바치자는 헛소리를 한 것이 아니죠.
자본주의적인 부동산 소유가 어떤 절대적인 진리는 '절대' 아닙니다.
자본주의의 전유(appropriation)는 '배타성'을 전제로 하고 개인적인 소유를 오히려 부정한다고 보았기 때문이 이를 비판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저도 굉장히 어려워하는 부분인데요. 혹시 관심 있으신 분은 마르크스의 '자본'1권과 알튀세의 '자본을 읽다'의 소유권 부분을 참조하세요.)
6/
지식과 예술이 위대한 이유는 그것이 모두에게 기쁨을 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개인 노트에 잠자고 있는 뛰어난 이론이 공개되고 다른 이론들과 접목되어 활용될 때 더 큰 가치를 지닐테고, 부유한 개인의 기도실에 걸려있던 르네상스의 그림들이 미술관에 전시될 때 보다 빛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인류 공동의 유산입니다.
백혈병 치료제가 한 제약회사만의 노력으로 탄생한 것은 아닐텐데요.
그 백혈병 치료제가 돈 많은 사람들만 복용하는 것이 아니라
돈 없는 사람들에게도 혜택을 전해줄 때 더 큰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닐까요?
(지적 재산권의 문제는 이런 것을 방해합니다.)
7/
발표자께서 '열림-닫힘'을 제시해 주셨는데요.
저는 열림의 문제의식에서 서술해 봤습니다.
가치는 공유될 때 더 커질 수 있는 것인데요.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공간일 수록 그 가치가 더욱 커집니다.
그에 대한 배타적 소유는 오히려 그것들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겠죠.


